사랑하시는 동역자님들께 백러시아에서 황존하가 드립니다.
팔월의 끝자락에 들어선 지금 저는 어느덧 두 달을 넘어서는 시간을 이곳 쿠스토비치에서 보내면서 구월 첫 날 새로이 대학생활을 앞두고 있습니다.
이 두 달간 이곳에서의 생활을 돌아보면 대부분의 시간들을 한국교회 곧 동역자님들을 떠올리며 보내왔다는 것을 오늘 문득 깨닫게 됩니다.
사실, 대략 3년 전, 이곳을 처음 구입하게 될 때, 가슴이 환해지면서 이곳이 아니라 한국교회 곧 동역자님들을 떠올렸던 것을 기억합니다.
한국에서 교회사역을 할 때에는 9, 10년에 이르는 세월들을 마치 호흡처럼 한결같이 이곳을 품어 왔는데, 요즘은 반대로 한국교회 곧 동역자들님을 부단히 떠올리고 있는 저를 봅니다.
무엇보다도 그 이유는 한국교회가 없는 이곳에서의 저의 존재를 떠올릴 수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요즘 저는 한국에서 신학과 교회 사역할 때는 상상도 못했던 이곳에 있는 저의 위치에 대해 부단히 되새겨 봅니다.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그저 ‘하나님의 섭리’라고 이 모든 것을 단정할 수 있겠지만, 돌아보면 이 모든 과정이 저에게 있어서는 ‘절망과도 같은 막다른 기로’에서 열려진 길을 따라 순종하여 오는 과정이라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에게 있어서 이런 과정은 초등학교 6년 처음으로 ‘십자가의 그리스도’를 구주로 받아들이면서 시작이 된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사춘기가 시작되면서 ‘교회’를 멀리하게 되었고, 세상에서 고립된 것 같은 극심한 불안이라는 방황의 시기를 보내면서 이런 저의 속내를 그 누구에게도 보일 수가 없어 ‘일기’로 표현하기 시작하였고, 스무 살 무렵 한국의 유명한 한 수녀시인의 시집으로부터 ‘평범한 일상에 사랑(진리)이 있다’는 가슴의 통찰과 군대를 제대하던 무렵, 고향의 작은 서점에서 사들고 온 톨스토이의 인생론(참회록)을 통해 드디어 열린 하나님의 은혜는 변함없이 제 가슴에 숨 쉬고 있습니다.
그것은 ‘인생이란, 서로 사랑하며 하나님께 점점 다가가는 것이다.’라는 “완전한 계시”였습니다.
‘당연한 거 아닌가?’ 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저에게 있어서는 이는 완전한 지식이요, 그 자체로 영원한 생명이요, 활짝 열린 성령의 길이었습니다.
그 이후 제가 걷는 길은 부단히 이에 비추어 저를 되돌아보며 교정하는 과정이라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
신학의 과정에 들어서고 성경을 대하면서 흔히 ‘구원사’라고 칭하는 인류와 역사의 중심인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찰하던 때 역시 제게 말할 수 없는 기쁨의 순간이었습니다.
더불어 이러한 과정들은 저 역시 바울사도를 따라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만’이 전부임을 배우던 시기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발견되는 저 자신의 한계를 불안해하고 절망하며 신학과 교회사역을 하며 보내던 때를 떠올려 봅니다.
이런 저런 계기들로 저 자신의 ‘인격적인’ 온갖 부끄러움들이 노출되던 때도 떠올려 봅니다.
알고 보면 그런 일들은 결국 극단적으로 표출이 되었고, 저 역시 저 자신에게 절망할 수밖에 없었지요.
그런 때면 당연히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한다고 하였는데, 실상은 전연 그렇지 않음을 그 절망스런 고통 가운데 새로이 확인하곤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함없이 하나님은 가까이 계셨고 제가 알지 못했던 새로운 길들이 준비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저는 지금 한국의 교회가 변함없이 저를 먹여주고 키워주고 있다고 고백할 수 있습니다.
신학의 길에 들어서면서 저에게는 한국교회에 대한 위기감이 항상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로 인해 그 누구보다도 바로 저 자신이 힘든 시간을 보내왔습니다.
요즘도 저는 인터넷을 통해 한국교회에 대한 온갖 부끄러운 소식을 접합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아무것도 질타할 수 없는 저를 봅니다.
왜냐하면 저는 그게 저의 부끄러움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금 고국에 계신 동역자님들께서 저마다 어려움을 참고 이겨내며 보내고 계신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바울사도를 따라 종교개혁자들은 하나님의 은혜 앞에 무엇보다도 우리의 죄를 볼 수 있는 영적 안목을 열어주셨습니다.
그리고 이는 우리 개신교가 물려받은 소중한 신앙의 유산일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도 그들처럼 우리의 허물을 부끄러워하거나 숨기려하지 않고 오히려 있는 그대로 인정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이런 면에서 요즘 저는 한국교회가 위기가 아니라 오히려 축복을 잉태하고 있다고 받아들입니다.
사랑하시는 동역자님들의 자리마다 진실로 은총을 기도드립니다.
그리고 이는 이곳에서 제가 그리스도를 따를 수 있는 길이기도 합니다.
진실로 감사드리며......
2014년 8월 29일,
황존하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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