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존하 선교사 선교편지 - 5월
이요셉
2014-06-18
추천 0
댓글 0
조회 283
백러시아에서 안부드립니다.
수업을 마치고 뙤악볕 아래 도서관으로 향하는 길, 책을 대출받고 정문을 나서자니 어느새 하늘은 검은 회색빛으로 뒤덮여 있고 이내 우박과 함께 굵은 소낙비가 한차례 지나갔습니다. 어제처럼 말이지요.
어느새 이곳도 여름 문턱을 넘어섰습니다.
지난 달, 상상도 못한 재난에 아픔을 겪는 한국사회 모든 이들에게 먼저 위로를 전하고 싶습니다. 도무지 믿기지 않는 재난의 현장 앞에 저 역시 한달 내내 무거운 고민과 물음 가운데 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우크라이나 역시 뿌리 깊은 내분으로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러시아나 백러시아의 입장에서 볼 때, 이는 결코 남의 일이 아닐 뿐만 아니라 어쩌면 이곳 동슬라브인들이 해결해야 할 가장 큰 과제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알고 보면 하나님의 은혜 없이 살 수 없는 우리의 실상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됩니다.
제가 수강하는 과목 가운데 <고대슬라브어>가 있습니다. 이 언어에 대해 잠시 소개하고자 합니다. 이 언어는 9세기 중순경 그리스의 한 선교사가 같은 슬라브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창안한 언어인데, 일상에는 전연 사용되지 않고 오로지 성경(복음서)번역을 위한 언어입니다. 지금도 이 언어는 정교회 주 예배(기도)언어입니다.
그러니까 이 언어의 번역이 이곳 동슬라브 선교의 시초라고 볼 때, 우크라이나를 비롯한 러시아와 백러시아의 기독교 역사는 이미 천년을 훌쩍 넘어섰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대략 1152년이 지난 것 같습니다).
정교회는 교회가 세워지면 ‘영구적으로’유지되는 전통이 있다고 들었는데, 이곳 백러시아에도 천이백년대에 세워진 교회와 당시의 이콘(성화)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변함없이 예배의 통로가 되고 있습니다. 참고적으로 정교회는 회중을 위한 의자가 없이 예수그리스도의 이콘을 비롯한 사도들과 정교회 전통의 성자들의 이콘을 돌아가며 촛불과 함께 기도하는 게 주된 예배의 흐름입니다. 그런 가운데 성직자와 성가대를 통한 각종절기에 따른 말씀이 화답하며 낭송되고요.
그러니까 일반적인 정교회의 예배전통은 천년 이전이나 지금이나 거의 동일하다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다보니 제가 공부하는 러시아 문학의 역사에 있어서도 기독교 정신이 본질적인 배경이라는 사실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런 “기독교의 나라”에 ‘무슨 선교사가 필요한가?’라는 비판을 간접적으로 종종 접하곤 합니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만일 선교라는 게 ‘가진 자가 가지지 못한 자에게 주는 것’이라는 관점에서라면 매우 타당하겠지요. 그러나 오늘날의 선교란 ‘복음을 서로 나누는 것’으로 이해한다면 어느 곳에서든지 우리는 얼마든지 주고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서로가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서로가 주고받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제가 생활하는 이 가정의 조카와 같은 어린 두 아이에게서 그리고 같이 공부하는 어린 동료들에게서도 알게 모르게 배운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쿠스토비치를 위해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지금 이 시간도 그곳에서는 마리아씨가 농사일을 하고 있습니다. 제대로 된 식사조차 못하고 이미 쇠약한 몸으로 빈 방에 이부자리만 마련한 채, 그곳에서 생활합니다. 지난 2011년 9월 중순경 그곳을 구입하고 꾸준히 개간해나가면서 지금은 나무랄 데 없는 농토로 변했습니다.
너른 들판에는 호밀들이, 그 한 가운데에는 감자가, 마당과 헛간 주변에는 파와 마늘 당근 피망 고추 도마도 콩 등, 그리고 울타리 밖에는 다양한 화초들이 자라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게 일흔을 훨씬 넘긴 마리아씨의 쇠한 몸에서 - 아니 눈물로 기도하는 그의 가슴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노년에 찾아온 이 분의 처한 환경이 결코 순탄하지가 않지만 저 역시 이분을 대할 때마다 오십을 갓 넘어 남편을 여의고 그리스도를 남편삼아 외로운 삶을 사시다 마지막까지 기도와 찬양 그리고 복음서를 저와 함께 나누다 떠나신 저의 어머니를 떠올리게 합니다.
기도 가운데 이 분을 기억해주십시오.
어제는 저와 함께 그곳을 둘러보다 자신도 믿기지 않는다고 하시더군요.
지금 이 시간 또다시 하늘에는 검은 구름이 뒤덮이고 바람 천둥과 함께 강한 빗줄기가 창문을 두들깁니다.
모두에게 감사와 사랑을 전합니다.
2014년 5월 25일 월요일 오후에, 황존하 드림
수업을 마치고 뙤악볕 아래 도서관으로 향하는 길, 책을 대출받고 정문을 나서자니 어느새 하늘은 검은 회색빛으로 뒤덮여 있고 이내 우박과 함께 굵은 소낙비가 한차례 지나갔습니다. 어제처럼 말이지요.
어느새 이곳도 여름 문턱을 넘어섰습니다.
지난 달, 상상도 못한 재난에 아픔을 겪는 한국사회 모든 이들에게 먼저 위로를 전하고 싶습니다. 도무지 믿기지 않는 재난의 현장 앞에 저 역시 한달 내내 무거운 고민과 물음 가운데 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우크라이나 역시 뿌리 깊은 내분으로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러시아나 백러시아의 입장에서 볼 때, 이는 결코 남의 일이 아닐 뿐만 아니라 어쩌면 이곳 동슬라브인들이 해결해야 할 가장 큰 과제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알고 보면 하나님의 은혜 없이 살 수 없는 우리의 실상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됩니다.
제가 수강하는 과목 가운데 <고대슬라브어>가 있습니다. 이 언어에 대해 잠시 소개하고자 합니다. 이 언어는 9세기 중순경 그리스의 한 선교사가 같은 슬라브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창안한 언어인데, 일상에는 전연 사용되지 않고 오로지 성경(복음서)번역을 위한 언어입니다. 지금도 이 언어는 정교회 주 예배(기도)언어입니다.
그러니까 이 언어의 번역이 이곳 동슬라브 선교의 시초라고 볼 때, 우크라이나를 비롯한 러시아와 백러시아의 기독교 역사는 이미 천년을 훌쩍 넘어섰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대략 1152년이 지난 것 같습니다).
정교회는 교회가 세워지면 ‘영구적으로’유지되는 전통이 있다고 들었는데, 이곳 백러시아에도 천이백년대에 세워진 교회와 당시의 이콘(성화)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변함없이 예배의 통로가 되고 있습니다. 참고적으로 정교회는 회중을 위한 의자가 없이 예수그리스도의 이콘을 비롯한 사도들과 정교회 전통의 성자들의 이콘을 돌아가며 촛불과 함께 기도하는 게 주된 예배의 흐름입니다. 그런 가운데 성직자와 성가대를 통한 각종절기에 따른 말씀이 화답하며 낭송되고요.
그러니까 일반적인 정교회의 예배전통은 천년 이전이나 지금이나 거의 동일하다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다보니 제가 공부하는 러시아 문학의 역사에 있어서도 기독교 정신이 본질적인 배경이라는 사실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런 “기독교의 나라”에 ‘무슨 선교사가 필요한가?’라는 비판을 간접적으로 종종 접하곤 합니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만일 선교라는 게 ‘가진 자가 가지지 못한 자에게 주는 것’이라는 관점에서라면 매우 타당하겠지요. 그러나 오늘날의 선교란 ‘복음을 서로 나누는 것’으로 이해한다면 어느 곳에서든지 우리는 얼마든지 주고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서로가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서로가 주고받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제가 생활하는 이 가정의 조카와 같은 어린 두 아이에게서 그리고 같이 공부하는 어린 동료들에게서도 알게 모르게 배운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쿠스토비치를 위해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지금 이 시간도 그곳에서는 마리아씨가 농사일을 하고 있습니다. 제대로 된 식사조차 못하고 이미 쇠약한 몸으로 빈 방에 이부자리만 마련한 채, 그곳에서 생활합니다. 지난 2011년 9월 중순경 그곳을 구입하고 꾸준히 개간해나가면서 지금은 나무랄 데 없는 농토로 변했습니다.
너른 들판에는 호밀들이, 그 한 가운데에는 감자가, 마당과 헛간 주변에는 파와 마늘 당근 피망 고추 도마도 콩 등, 그리고 울타리 밖에는 다양한 화초들이 자라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게 일흔을 훨씬 넘긴 마리아씨의 쇠한 몸에서 - 아니 눈물로 기도하는 그의 가슴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노년에 찾아온 이 분의 처한 환경이 결코 순탄하지가 않지만 저 역시 이분을 대할 때마다 오십을 갓 넘어 남편을 여의고 그리스도를 남편삼아 외로운 삶을 사시다 마지막까지 기도와 찬양 그리고 복음서를 저와 함께 나누다 떠나신 저의 어머니를 떠올리게 합니다.
기도 가운데 이 분을 기억해주십시오.
어제는 저와 함께 그곳을 둘러보다 자신도 믿기지 않는다고 하시더군요.
지금 이 시간 또다시 하늘에는 검은 구름이 뒤덮이고 바람 천둥과 함께 강한 빗줄기가 창문을 두들깁니다.
모두에게 감사와 사랑을 전합니다.
2014년 5월 25일 월요일 오후에, 황존하 드림
댓글0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