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러시아에서(2월)
한 주의 학교생활이 시작되는 이곳 백러시아는 바람이 조금은 쌀쌀한 감이 있지만 봄날처럼 화창한 하루입니다.
일월의 그 매섭던 한파는 신기하게도 2월에 들어서면서 하루가 다르게 상승하더니 이처럼 겨울보다는 봄을 느끼게 하는 하루하루입니다.
지난 주에는 쿠스토비치(집과 대지가 있는)에 마리아씨와 잠시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작년에는 쉬임없던 폭설로 인해 4월 무렵에는 그 대지가 마치 연못과도 같았는데 지금은 호밀들이 손바닥 크기만큼 푸르게 자라나고 있습니다.
아직은 아무런 살림도구가 없는 빈집이지만 오랜 세월동안 현지인이 농사를 지으며 살아온 곳인지라 그동안 하나하나 정리해나가자니 지금은 나름 정갈한 모습입니다.
돌아오는 길, 마리아씨가 그곳에서 농사일을 하며 묵곤 하던 이웃집에 잠시 들렀는데, 그곳에서 푸짐한 음식을 대접받자니 어린 시절 시골인심이 그대로 되살아나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동안 3주간의 방학이 있었고, 이제는 개학을 하고 3주째 접어들고 있습니다.
방학동안 오후시간이면 오래된 습관처럼 두툼하게 옷을 입고 시내나 외곽의 강이나 숲까지 산책을 하곤 하였습니다.
시내, 하얗게 언 호수에서는 남자아이들이 아이스하키를 즐기고 그 또래 여자아이들은 끼리끼리 얼음 위를 거닐고 작은 언덕에서는 어린 아이들이 그 매서운 추위에 썰매를 타고 노는 게 참 인상적이고 평화로이 기억이 됩니다.
시내 외곽, 한 자도 훨씬 넘게 투명하게 언 강 위를 가로질러 작은 숲이 있는 평지를 거닐자니 귀가 커다랗고 꼬리가 두툼한 갈색 여우가 깊게 쌓인 눈에 빠지며 부리나케 달아나던 게 보이더군요.
이처럼 이곳의 여우는 마을 근처에서 살아갑니다.
종종 닭과 같은 가축을 습격한다는 얘기를 들은 바가 있습니다.
몇 차례 간략하게 언급을 했던 것 같은데 제가 다니는 대학이 이곳 백러시아의 남서에 위치한(폴란드와 국경도시인) 브레스트의 국립 A. S 뿌쉬킨 대학입니다.
러시아의 대문호가 대학이름이라는 게 조금은 이채롭습니다.
왜냐하면 이곳의 대학 외에 다른 대학은 하나같이 지명 곧 도시의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이 유명한 대문호가 대학이름이 된 데에는 나름 이유가 있습니다.
이 젊은 대문호가 선지자적 Vision 가운데 러시아 곳곳을 여행하였었는데, 바로 이곳 백러시아의 브레스트 현재 제가 공부하는 인문학 구본관 건물에 잠시 머문 게 결정적 계기라고 합니다.
어찌보면 사소하기 이를 데 없지만 이는 이곳 사람들(러시아 백러시아 우크라이나 등)이 영원한 젊음인 이 대문호를 그 얼마나 사랑하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입니다.
예를 들자면 보통 러시아를 비롯한 이곳 백러시아는 이처럼 위인들의 인명이 주로 거리의 지명으로 사용되는데, 모스크바의 중심거리도 뿌쉬킨일 뿐만 아니라 이곳 대학이 있는 거리도 역시 뿌쉬킨입니다.
그러니까 러시아 정신의 핵심인물이 바로 이 뿌쉬킨이라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곳의 마리아씨도 어릴적부터 뿌쉬킨의 시를 주로 읽었다고 하는데 뿌쉬킨이 누구냐고 물으면 자신의 심장을 가리키며 ‘영원한 사랑’이라고 대답합니다.
한 번은 제가 한 교수에게, 대학의 교수뿐 아니라 일반 사람들도 보통 그처럼 뿌쉬킨을 생각하느냐고 물었더니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렇다.”고 대답을 하더군요.
사실, 한국에 있을 때 제가 이 대문호에 대해 아는 바는 거의 없었습니다.
대신 제가 신학의 길에 들어서는데 결정적 계기가 L. N 똘스또이의 저작이었고, F. M 도스토예프스키를 통해서는 인간의 성향에 대해 배울 수 있는 계기였다고 말할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아무튼 A. S 뿌쉬킨 이후 러시아의 문호들은 하나같이 기독교정신이 바탕이 된 “휴머니즘”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였고, 그게 바로 러시아 문학이 세계에 공헌한 귀한 선물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제가 보기에 러시아 정신을 제대로 통찰하기 위해서는 A. S 뿌쉬킨 이후 이러한 러시아의 다양한 문호들의 정신세계와 작품들을 이해하는 게 지름길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제 곧 3월이면 제가 공부하는 인문학과에도 다양한 행사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곳의 날씨가 워낙 변화무쌍한지라 3월에 갑자기 한파가 되돌아올지는 아직은 알 수 없습니다.
아무튼 동역자님들 모두 주 안에서 새 봄의 새 희망이 가득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2월 넷째 주 월요일 저녁에,
황존하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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